노동자도, 사업주도 웃지 못한 결정
지난 7월 14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27년 적용 최저임금을 시간당 10,700원으로 의결했습니다.
올해(10,320원)보다 380원, 3.7% 오른 금액입니다.
주 40시간(월 209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월급은 세전 2,236,300원, 4대 보험과 세금을 공제한 실수령액은 대략 198만 원 선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 결정에 박수를 친 쪽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노동계와 소상공인 단체가 나란히 등을 돌렸습니다.
민주노총과 소상공인연합회는 7월 27일 각각 고용노동부에 이의제기서를 제출했습니다.
노동계와 사용자 측이 나란히 이의를 제기한 것은 2022년 이후 4년 만의 일입니다.
왜 '을'로 불리는 노동자와 소상공인이 동시에 이 결정에 반발했을까요?
오늘은 최저임금이라는 제도를 하나씩 뜯어보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1. 최저임금이란 무엇인가
- 개념: 최저임금이란 국가가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 법으로 정한 임금의 최저 수준을 말하며, 고용주가 부담하는 시장 규제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 연혁: 최저임금제도는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되었고, 1988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었습니다.
- 결정 구조: 최저임금은 노동자위원 9명·사용자위원 9명·공익위원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됩니다. 통상 8월 5일까지 최종 확정·고시되며, 결정된 금액은 다음 해 1월 1일부터 모든 사업장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2. 노동자와 사용자,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다
◆ 노동자 입장: "사실상 동결"
노동계는 이번 인상률이 최근 체감 생계비 상승과 누적된 실질임금 감소를 만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합니다.
근로자위원 측은 3.7% 인상이 사실상 동결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배달 라이더나 퀵서비스 기사 같은 플랫폼·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별도 최저임금 적용안이 부결되어서, 민주노총이 이의제기서를 낸 핵심 이유입니다.
◆ 사용자 입장: "지불 능력의 한계"
경영계는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운 경영 현실과 지불 여력의 한계를 근거로 동결을 주장해왔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번 인상으로 월급 기준 약 7만 9,000원, 연봉 기준 약 95만 원의 인건비가 추가로 발생하며, 소상공인 10명 중 4명은 월평균 영업이익이 2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조차 손에 쥐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노동자는 "물가를 못 따라가는 인상"이라 반발하고, 소상공인은 "감당할 수 없는 인상"이라 반발합니다.
같은 숫자를 두고 정반대의 이유로 분노하는 셈입니다.
결국, 최저임금이 업종별 지불 능력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 획일적 적용이 문제의 발단이며, 합의가 아닌 표결로 결론이 난 것 자체가, 이번 최저임금이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3. 왜 '을 대 을'의 싸움인가 – 안태현 교수의 시각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 폐업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 분석하고 있는 안태현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갈등의 본질을 다르게 짚습니다.
그는 최저임금 논쟁이 흔히 대기업과 노동자의 대립 구도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와 생계를 위해 가게를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가 부딪히는 '을과 을의 싸움'에 가깝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구조가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는 자영업 비중(26%)이 다른 나라(10~15%)보다 훨씬 높은 노동시장 구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 인건비 인상분을 흡수할 여력이 있는 것과 달리, 임대료와 원자재비에 이미 짓눌린 영세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이 오르는 만큼 고용을 줄이거나 폐업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 사이에서 정작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당사자가 바로 소규모 자영업자라는 것이 안 교수의 문제의식입니다.

안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최저임금을 올릴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저임금 노동자 보호와 영세 자영업자 지원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그의 표현처럼, 이 제도 하나로 노동시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4. 최저임금을 보완할 수 있는 정책들
'인상이냐 동결이냐'의 대립을 넘어서기 위해 논의되는 보완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근로장려세제(EITC)·근로장려금 확대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 소득을 국가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방식입니다.
최저임금처럼 고용주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고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노동자의 가처분소득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②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영세 사업장의 4대 보험 부담을 정부가 일부 분담하는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 제도 등을 확대하면, 소상공인이 호소하는 '인건비 외 추가 부담' 문제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소공연이 지적한 "4대 보험 포함 연 1,000만 원 이상 추가 부담"이라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합니다.
③ 임대료 부담 완화
소상공인의 비용 구조에서 인건비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임대료입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한 임대료 상한 규제 등이 함께 논의되지 않으면, 최저임금만으로 소상공인의 경영난을 설명하고 해결하려는 시도는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④ 업종별·고용형태별 맞춤 제도 설계
이번 심의에서도 외식업 등 일부 업종에 대한 차등 적용, 배달 라이더 등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별도 적용 방안이 논의됐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매년 같은 논쟁이 반복되는 구조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이런 보완책들의 공통점은, 최저임금 하나에 모든 부담을 지우지 않고 재정·세제·법률 등 여러 정책 수단으로 부담을 분산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5. 알바 구직과 우리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
당장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청년이나 대학생 입장에서 이번 결정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시급 자체는 380원 올랐지만, 인건비 부담이 커진 사업주들이 채용 인원을 줄이거나, 주휴수당이 발생하지 않는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근로'로 근무 형태를 전환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소상공인 업계가 예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이번 인상이 단순노무직군의 고용 축소를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시급은 올랐지만 정작 일할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성 업무처럼 근로자성 자체가 모호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흐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배달 라이더나 콘텐츠 제작 스태프처럼 실질적으로는 지시를 받으며 일하지만, 계약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오히려 이런 사각지대의 일자리로 밀려나는 노동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할 대목입니다.
결국 최저임금은 단순히 '시급이 얼마 올랐다'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일자리를 구하게 될지를 결정짓는 구조의 문제입니다.
알바 자리 하나를 구하는 것도, 그 이면에는 노동자·자영업자·정부가 매년 벌이는 이 치열한 줄다리기가 놓여 있는 셈입니다.
3.7%라는 숫자 자체는 크지도 작지도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숫자를 둘러싼 갈등의 크기는 그 어느 해보다 큽니다.
노동계는 물가를 못 따라가는 인상이라 반발하고, 소상공인은 감당할 수 없는 인상이라 반발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안태현 교수가 말한 '을과 을의 싸움'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을 올릴지 말지의 이분법을 넘어, 근로장려세제·사회보험료 지원·임대료 규제·업종별 맞춤 제도 같은 보완책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결국 노동자와 자영업자 모두를 위한 길이 아닐까 합니다.
8월 5일 최종 고시를 앞둔 지금, 이 논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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